6월 13일.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러 나가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 없이 단 둘이 집에서 가까운 융건릉으로 산책을 다녀왔었답니다. 매번 동네 시골길을 주로 산책하니까 조금 지루한 느낌도 있고 해서 데이트 겸 나들이로 융건릉을 다녀왔어요.
화성 융릉과 건릉은 무료가 아닌 유료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관람 시간은 시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우리 부부가 방문했던 6월~8월은 매표시간 09:00~17:30이고 관람시간은 09:00~18:30까지였고 9월~10월은 매표시간 09:00~17:00, 관람시간은 09:00~18:00까지입니다.
입장료는 1,000원인데 우리 부부는 화성시민이라서 50% 할인을 받아서 입장했어요.
화성 융릉과 건릉 안에 있는 안내도에는 세계문화유산 융릉·건릉 (사적 제206호)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는데 검색을 해 보니까 융건릉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 아니고 조선 왕릉이라고 해서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총 40기의 왕릉이 함께 등재되어 있네요.
안내도에 적혀 있는 융건릉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융릉은 1899년에 추존된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왕후를 모신 능이며, 건릉은 제22대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능이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들이자 제22대 정조의 생부이고, 정조는 재위 24년간(1776-1800) 탕평책을 실시하는 등 선정을 베풀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융릉·건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 역사문화관에서 볼 수 있을 거 같지만 코로나 때문에 관람 중지. 이때도 관람 중지였으니 지금도 역시 관람은 불가능할 거 같네요.
매표소를 지나 능까지 가는 길은 잘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 개울도 있고 패랭이꽃도 보이고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까지 기분 좋은 산책을 할 수 있게 정비가 잘 되어 있어요.
솔직히 두 개의 능이 똑같이 생겨서 구분이 잘 안 갑니다. 그래서 두 개의 능 사진을 함께 보여드릴게요.
융건릉 앞에는 제향(祭享)[각주:1]을 드릴 수 있는 건물이 있고 그 건물까지 가는 길은 향로와 어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향로는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고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이라고 하는데 관람객들은 어로를 이용하라고 되어 있어요.
제향소를 지나면 저렇게 출입 통제가 되어 있고 능이 보입니다. 경주에서 능들과 비교하면 능 자체의 크기는 소박해 보이지 않나요?
이렇게 일단 입구에서부터 융릉 또는 건릉을 보면 산책로를 따라서 능 뒤쪽을 돌아서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요. 그렇게 걸어서 한 바퀴를 돌아 내려오면 다른 능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돌아 걷지 않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다가 갈림길에서 다른 능으로 가는 방법도 있고요.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후자를 택하는 거 같은데 우리 부부는 산책의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능 뒤로 돌아서 오는 길을 택했습니다. 시원한 산 바람과 함께 걷기 시작. 잘 관리되어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렇게 융건릉 안내석과 돌무더기를 만날 수 있어요.
2번, 3번 안내석을 만날 때 까지는 우거진 나무로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가 있었는데요. 아하~ 역시 삶이란 순탄하기만 할 수는 없는 건가 봅니다.
이 짧은 코스에서도 시련(?)이 존재하니까요.
"찌는 태양에 지쳐 가는 누들랜드" 뜬금없이 영계백숙 노래가 생각나는 뜨거운 길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 뜨거운 길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요.
대부분은 그늘진 길이어서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만난 5번째 안내석. 응? 그런데 4번 안내석은 왜 없죠? 우리가 길을 잘 못 온 걸까요?
5번 안내석을 지나 시원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요. 예전에 왔을 때는 여기서는 무조건 오른쪽으로만 갔어야 하는데 왼쪽 길이 새로 생겼습니다. 코스가 우리 예상보다 짧아서 조금 더 걸어볼 생각으로 왼쪽 길로 들어서니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화성 융릉과 건릉" 초장지 숲길 처음 개방이라고 적혀 있어요.
초장지가 뭔지는 아래와 같이 안내판에 친절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1800년 6월 정조가 승하하자 생전에 아버지 곁에 묻히고자 했던 정조의 뜻에 따라 현릉원(현재의 융릉) 근처 동쪽에 건릉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821년 정조비 효의왕후가 승하하여 건릉에 합장하려고 할 때 건릉의 능 자리가 길지가 아니므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 결과 정조가 생전 능 자리로 염두에 두었던 여러 곳 가운데 수원향교 옛터에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하여 모시게 된 것이 현재 건릉이다. 정조가 처음 묻혔던 곳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1년과 2012년 이곳에서 왕릉 규모의 봉분 구역과 담장시설, 그리고 왕릉 부장품에 적합한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곳이 정조가 처음 묻힌 곳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초장지까지 관람을 마치고 새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데이트 겸 나들이를 마치고 아이들 밥 챙겨주러 집으로 돌아왔어요.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건 아니라 화성 융릉과 건릉만 보러 먼 곳에서 오기에는 조금 부족할 수도 있지만 주변에 용주사도 있고 맛집들도 꽤 있고 가까운 곳에 수원 화성도 있으니 코스를 잘 짜신다면 알찬 당일 여행 코스로 괜찮을 거 같아요. 이제 시원한 가을! 마스크 꼭 착용하시고 화성 융릉과 건릉 나들이 어떠실까요?
각종의 제사 의식(祭祀儀式)을 말함. 조선 시대의 제향(祭享)은 크게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나누었는데, 대사는 사직(社稷)•종묘(宗廟)에 제사하는 것이고 중사는 풍운뇌우(風雲雷雨)•악해독(嶽海瀆) 등과 선농(先農) •선잠(先蠶)•우사(雩祀)•문선왕(文宣王) 등에 대한 제사이며, 소사는 영성(靈星)•명산대천(名山大川)•사한(司寒)•마조(馬祖)•선목(先牧)•마사(馬社)•마보(馬步)•둑제(纛祭) 등에 대한 제사이었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