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순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북선이 빠질 수 없죠. 거북선의 실내 구조를 볼 수 있는 이런 전시물도 볼 수 있어요.
조선 수군의 체계와 전술에 대한 영상도 볼 수 있고
현재 이순신 장군의 칼은 위 두 자루 포함해서 여섯 자루 정도 남아 있다고 하는데요. 위 칼은 예식용 장검으로 두 검이 한쌍인 쌍수도입니다. 칼 날에는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 ·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는데요.
三尺誓天 山河動色 삼척서천 산하동색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一揮掃蕩 血染山河 일휘소탕 혈염산하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일본군들이 들으면 기겁을 했을 문장입니다.
이충무공전서라는 책도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이 책은 이순신이 한 일과 남긴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들라는 정조의 명을 받아 규장각에서 4년 동안 작업하여 모두 14권 8 책으로 묶어 펴낸 이순신 관련 자료의 집대성이라고 합니다. 정조는 이 책을 편집할 때도 여러 번 관심을 보이고, 인쇄할 때는 임금의 개인 돈까지 내려주었다고 하네요. 이순신의 책 하면 난중일기만 알고 이충무공전서라는 책은 처음 알았는데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올해 10월 완료를 목표로 정본화와 재번역 사업이 추진 중이라고 하니까 다음 달에 조만간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갔던 5월에는 현충사 중건 90주년 특별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요.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1930년대 초 충무공 종가의 가세가 기울어 묘소와 위토[각주:1]가 저당 잡혀 경매에 넘어갈 상황이었는데 1931년 5월 13일 동아일보에 "2천 원에 경매당하는 이충무공의 묘소 위토"라는 제목의 기사와 다음날 실린 정인보의 사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전국 각지에서 뜨거운 호응이 일어나 1932년 3월까지 젖국 각지의 사람들과 해외 동포 등 약 2만 명의 사람들과 4백여 단체가 성금 모집에 동참하여 성금과 함께 수많은 사연이 담긴 편지들이 전달되었고 1931년 5월 23일 '이충무공 유적보존회'가 결성되었다고 합니다.
이충무공 유적보존회는 1931년 6월 13일 묘소와 위토에 걸린 채무를 청산하고 1931년 7월 26일 기공식을 시작으로 현충사 중건을 시작하였고 1931년 12월 말 마무리되어서 1932년 6월 5일에 현충사 낙성식과 영정 봉안식을 개최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을 이렇게 구했던 선조들이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4D 영상실에서는 시간 별로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와 혁신의 리더, 이순신 그리고 명량해전, 노량해전을 사영하는데요. 처음에는 명량해전 하나만 보려고 했는데 잘 만들어져 있어서 마지막 시간에 노량해전까지 봤네요. 이런 전시 또는 박물관에서 상영하는 4D 영상들을 보면 타깃을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서인지 너무 유치하고 솔직히 재미없는데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은 새로 만든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4D 체험에 맞게 꾸며 놓은 거라서 우리 아이들 뿐 아니라 저와 아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현충사 방문하신다면 꼭 시간 내서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여기까지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 대한 내용인데요. 현충사의 나머지 공간은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