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죠.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불국사는 2018년 가족 여행 때 갔었는데 석굴암은 못 갔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석굴암에 가기로 애초에 계획을 했었죠.
구름이 많은 경주 날씨. 덕분에 많이 덥지 않았던 날씨. 기분 좋은 경주여행의 둘째 날이 시작됩니다.
석굴암에 도착했습니다. 세계유산 석굴암 석굴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문패 역할을 하는 듯 놓여 있습니다. 석굴암은 입장료를 받는데 성인 6,000원, 중고생 4,000원, 초등생 3,0000원이었어요.
석굴암 가는 길은 입구에서 그렇게 가깝지는 않네요. 그래도 잘 다듬어진 길에 우거진 숲 속을 걷는 느낌이라 기분 좋게 산책한다 생각하고 가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선선한 바람맞으며 기분 좋은 한 걸음 한 걸음 이동을 합니다. 어느덧 엄마와 키가 비슷해진 두 아들. 하지만 아직 한 참 더 커야 합니다. 아빠보다는 커야죠.
사진 찍으며 조금 늦게 도착한 아빠는 신경도 안 쓰고 물이 보이는 곳으로 달려간 아내와 아이들.
이게 바로 석굴암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게 해 준 감로수죠. 신라인들은 석굴암을 만들 때 바로 이 차가운 물 감로수를 석굴암 바닥에 흐르게 해서 습기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한여름에 에어컨을 켰을 때 에어컨의 차가운 냉매 쪽으로 습기가 모여들어 습기가 사라지는 원리와 같은 과학적인 이유에서였는데 1907년 일제에 의해 대대적인 발굴과 해체업을 하면서 이러한 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감로수를 외부로 돌려뒀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는 대형 온냉방기로 온도와 습기 조절을 하고 있다고 하죠. 😩
원래 마실수도 있었던 감로수인데 이때는 코로나 때문인지 바가지들이 전부 없어서 마셔볼 수도 없었네요.
감로수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석굴암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돌로 만들어진 계단인데 여기는 경사가 제법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접근성이 마냥 좋지는 않네요.
드디어 도착한 석굴암입니다. 석굴암 내부는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대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삼층석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러운 인왕상, 위엄 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 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한편, 현재 석굴암은 내부 전면 공개 관람 시 항온항습 등의 문제가 우려되어 1976년부터 유리벽을 통한 외부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학생 때 이후로 몇십 년 만에 보는 석굴암은 뭔가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예전에는 그냥 학교에서 단체로 우~ 몰려와서 코스대로 지나가면서 보는 그게 전부였는데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로 와서 보는 석굴암은 뭔가 찡한 게 느껴집니다.
아이들 역시 유리로 막힌 석굴암을 보면서 "이게 일본 사람들이 망가트려서 이렇게 막아 놓은 거지?", "저기 에어컨 원래는 없던 거지?" 등 자기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을 비교하면서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뭔가 뿌듯함이 느껴지고요.
석굴암 구경을 끝내고 내려가기 전 보는 풍경은 이렇게나 멋지네요.
일본에 의해 망가지지 않은 석굴암이었다면 저렇게 막혀 있지 않은 상태로 석가려애불상은 이 멋진 풍경을 보면서 우리를 보살펴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이제 올라온 길 반대쪽을 내려가 봐야죠. 내려가는 길 역시 경사가 꽤 있어서 조심해서 내려와야 합니다. 다른 힘들어하는 모습이 전 재미있네요. 😄
다 내려오니까 보이는 커다란 돌들. 석굴암 석물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 석조물들은 석굴암을 수리(1913 ~ 1915. 1962 ~ 1964)할 때 교체된 구부재들과 기타 주변 석물들로 신라인들의 손길이 스며있는 귀중한 유물들이다."라고 적혀 있어요.
12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돌들을 다듬고 운반하면서 저런 걸 만들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체로 우르르 몰려와서 생각이나 감상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 거 말고 이렇게 오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새삼 느끼는 석굴암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석굴암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저보다 더 자세히 아는 것들도 있어서 신기했거든요.
오늘 같은 어린이날. 아이와 함께 이런 문화재 구경하는 것!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